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펑크 록 (문단 편집) === 펑크 록의 종말과 분화 === 펑크 록의 종말은 의외로 일찍 찾아왔다. 그 이유는 워낙 주변인적인 문화였던 펑크 문화가 주류 미디어의 간택을 받고 대중매체에 편입되기 시작하면서 그 정체성 자체가 분열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물론 당시의 펑크록 밴드들에게는 셀아웃[* 펑크 무브먼트에서 펑크 본연의 순수함을 잃고 락스타가 되기 위해 안달난 밴드나 레이블을 일컫는 단어. 셀아웃 자체가 "배신자"라는 뜻이 있다. 물론 지금은 언더그라운드와 오버그라운드의 경계가 모호해졌고 더이상 인디나 언더그라운드 문화의 순수성이라는것 자체가 의미 없어진 면이 많기 때문에 셀아웃이라는 단어 자체가 구닥다리 사어 취급을 받고 있다.]이라는 개념 자체가 전무했고[* 셀아웃 자체가 1980년대 초반 하드코어 펑크 탄생 이후에 생겨난 개념이다.], 당시 밴드들은 "새로운" 음악에 빠졌을 뿐 "배타적인" 음악에 빠져든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애초에 음악하고 돈 벌면서 사회운동을 한다는 것 자체가 잘못된 전제이기도 했고 진짜 사회운동을 하려면 [[폭동]]을 일으켰어야 했다. 그러나 음악 그 자체로 놓고 봤을때 기존 록 음악의 안티테제격인 음악이었음은 변함이 없고, 이러한 음악이 주류 미디어에 지속적으로 얼굴을 비추고 기존의 락스타들의 자리를 대체하기 시작했을 때부터 펑크 록은 '몸과 마음이 따로 노는' 현상이 생겨난 것이다. 가사와 음악으로는 니힐리즘이나 기존의 세계에 대한 부정을 이야기하고 있었는데 어느새 정신을 차려보니 자신들이 새로운 질서의 주류가 되어버린 것. 그리고 이미 올라간 위치가 있기 때문에 옛날처럼 조그마한 클럽에서 공연하기에는 아무래도 무리였다. 결국 펑크 록은 1977년에 정점을 찍고, 1978년에 [[뉴웨이브(음악)|뉴 웨이브]], [[포스트 펑크]] [[파워 팝]], Oi 펑크[* oi는 영국에서 주로 노동계급들이 쓰는 말로 뜻은 hey이다. 영국에서도 hey를 쓰기는 하지만 oi는 영국만의 표현.] 등 수많은 하위 장르로 분화된다. 이때부터 펑크 문화도 세분화되어서 더 이상 1977년도 그대로의 펑크문화는 남지 않게 된다.[* [[섹스 피스톨즈]]의 보컬리스트 쟈니 로튼은 영화 [[시드와 낸시]]에서 모히칸 머리를 한 엑스트라가 등장하는 것을 보고 "저때는 그런 머리 모양은 존재하지도 않았다"고 일갈한 바가 있다. 사실 [[1970년대]] 당시 펑크 스타일은 지금 기준으로 봤을때 상당히 기괴하고 지저분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